김종필 전 국무총리-자민련 총재의 삶과 운명이 주는 교훈

김종필 정치 은퇴하며 “정치는 허업(虛業)” “국민은 호랑이” 피력

정구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6/25 [10:02]

김종필 전 국무총리-자민련 총재의 삶과 운명이 주는 교훈

김종필 정치 은퇴하며 “정치는 허업(虛業)” “국민은 호랑이” 피력

정구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6/25 [10:02]

▲지난 6월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브레이크뉴스

 

역사가 주는 교훈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적용 받는다. 인간은 욕망과 권력욕으로 영욕(榮辱)을 꿈꾸어 보지만 생()을 마감할 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사에 남는 사람도 있다.

 

역사를 훑어보면 임금이 좋은 정치를 이룩할 때는 반드시 뛰어난 제상이 보필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영웅호걸들에게는 반드시 남다른 절개와 용기가 있었다.

 

동양 삼국의 한일에는 반드시 2인자가 있었다. “은인자중(隱忍自重)”이라 했다. , “끈덕지게 참고 기다린다는 말이다. 2인자가 되려면 완벽해야 한다. 한 나라의 통치는 왕이나 대통령 혼자가 하는 게 아니다. 조조에게는 전략들이 2000여 명이나 있었다. 제갈량 역시 갑자기 유비에게 발탁된 것이 아니라 사랑방을 기웃거리던 선비였다. 유방을 도운 한나라를 세운 장량도 향우 밑에서 발탁되지 못하여 유방에게로 가서 성공한 사례다. 한 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은 충성은 귀에 거슬리지만 어떤 일을 행하는 대로 이롭고, 성분이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다고 하질 않았는가?

 

중국 당 태종(太宗)은 치열한 굴욕 상쟁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자기를 제거하려 했던 현신(賢臣)”이 하도 직언(直言)을 하는 덕분에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기록했다. 조선시대 세종이 형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최고의 재상이었던 황희(黃喜)24년간 영의정 자리에 있었다. 조선을 개국한 일등 공신 정도전과 한명회의 삶과 운명에서 주지하다시피 왕조시대는 간신을 구별하는 눈은 군주에 필요했지만 민주사회에서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심판은 시민의 몫이다.

 

영욕의 정치 풍운아 역사 속으로 떠나다

 

중국 속담에 영화시초상로 부귀시와두상(榮華是草上露 富貴是瓦頭霜)“이라 했다. , ”영화(황제, , 대통령)는 풀잎 위의 이슬(죽음을 피할 수 없다)이고, 부귀(한 때)란 기와에 내린 서리(無常)“라는 뜻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삶과 운명을 보더라도 한 때의 권력이란 풀끝에 맺힌 이슬이다라는 뜻이 아닌가?

 

필자는 출간 직전인 가제 대통령을 집필하는 동안 전직 대통령의 삶과 운명, 국정 운영 등에 관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그 시대의 배경과 2인자들의 삶과 운명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평가했다.

 

아쉽게도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과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 증언록” 2권은 주관적이었다. 김종필 회고록에는 “5.16과 박정희”, “3공화국 수립과 한일회담의 진실”, “조국근대화의 여명과 권력투쟁”, “유신 개헌 그리고 운명”, “자민련 창당과 DJP연합등이 나온다.

 

김종필의 양비론

 

알다시피 김종필은 박정희와 419혁명을 뒤집고 516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며 전면에 등장하여 박정희와 18년 간 정치여정인 공과(功過)는 한국정치사에 교훈과 경종을 주었다.

 

그는 박정희와 함께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여 한강의 기적과 산업화로 물질적 토대를 구축했다. 1971년 제창된 새마을운동은 조국근대화라는 기치 하에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발전에 중흥을 이룩하려는 사회개혁을 내세웠다.

 

역사는 심판한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야당인사 탄압, 여권핵심부 동향 파악, 대북공작 주도, 유신체제 출범을 통해 국정을 장악하고 영구집권을 꿈꾸었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로 정치권에서 잠시 멀어졌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내각제를 앞세워 자의반 타의반 YS(김영삼)DJ(김대중)을 대통령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도 정작 자신은 권자(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영원한 2인자였다.

 

19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회담을 통해 대일청구권 협상의 물꼬를 튼 후에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보상금 8억 달러를 받고, 일제침략만행에 대한 사죄가 빠진 채 강제징병, 원폭피해, 군위안부, 우편저축금과 유가증권, 미지급임금, 문화재 반환, 어업문제, 연금 외 개인 피해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데 서명한 장본인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정희에게 유신개헌에 직언을 하지 못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다

 

그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1969103선 개헌과 19721017일 유신 선포에 의해 두 번째 쿠데타를 단행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넜다. 박정희의 군정 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대학생과 종교인들이 저항의 움직임이 조직화되고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긴급조치발동으로 박정희와 철권정치를 강행해 정권을 유지하며 장기집권과 반민주적 통치를 반대하는 학생,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 근로자, 농민, 도시빈민자 등의 저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탄압했다.

 

한 줌으로 흙으로 돌아가다

 

책사에서 천하를 얻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을 때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네,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라 했고, 두보(杜甫)는 양자강 절벽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남긴 <각야>라는 시()에서 충신(忠臣)이나 간신(姦臣)이나 모두 다 사람이다. 한번 죽으면 다 흙이 된다고 했다.

 

김종필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독서광이었다. 필자는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음성(音聲)은 금성(金聲종소리 또는 쇠소리)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연설을 할 때 수십야 만명이 모여도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김종필 총리는 목성(木聲나무 소리)이다. 학교 선생으로 제자를 양성하고 낭만적인 운명을 타고 났지만 정치인이면서도 정치인이 아니었다.

 

생전에 김종필은 정치를 은퇴하며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했다. “국민은 호랑이라는 경종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새겨들으며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국정운영을 바란다. jgy2266@hanmail.net

 

필자/ 평론가(역사), 칼럼니스트(식물, 행복, 건강 등), 약초에서 건강을 만나다 외 30권 저자, 약초와 건강 강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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