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다시 구원투수 등판 막후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20/04/27 [16:45]

김종인 다시 구원투수 등판 막후

김혜연 기자 | 입력 : 2020/04/27 [16:45]

4·15 총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이 당을 재건하기 위해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총선 참패의 뒷수습을 할 구원투수로는 선거 과정에서 등장했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다시 등판한다.

 

통합당은 4월22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4월24일 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김종인 비대위’ 결정의 배경에는 김 전 위원장 말고는 통합당을 수습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대위 체제 전환과 새 지도부 선출 등을 둘러싸고 주도권 경쟁과 내부 총질로 인한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궤멸 위기의 통합당 최고위, 격론 끝에 ‘김종인 비대위’ 선택
김종인, “당 재건 위해 확실한 기간과 권한 보장해 달라” 요구
당내 반발 계속…전국위 개최하더라도 불발에 그칠 우려도 감지

 

▲ '여의도 차르'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통합당 총선 참패의 뒷수습을 할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한다.

 

미래통합당이 결국 ‘김종인 비대위’로 가기로 했다. 총선 참패의 혼란을 수습하고 당을 재건하기 위해 ‘김종인 카드’를 해법으로 택한 것이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당대표 권한대행 4월23일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비상대책위원장직 수락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심 권한대행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오늘 저녁에 (김종인 전 위원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김 전 위원장과의 회동을 공식화했다.

 

결국 ‘김종인 비대위’ 선택


그는 기자들로부터 ‘김 전 위원장이 무기한 임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무기한 전권 위임’이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다”며 “그런데 김 전 위원장이 7~8월 전당대회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통합당은 전날인 4월22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총선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당을 꾸려가기로 결정했고, 비대위원장은 김 전 위원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심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가도록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제(4월21일) 하루 종일 20대 국회의원과 21대 당선자 142명에 대해 전화를 전수조사로 돌렸다. 아예 연락되지 않은 분은 2명이고 나머지 140명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 수렴한 결과, 김종인 비대위가 다수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전국위원회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준비되는 대로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심 권한대행은 ‘김 위원장이 받아들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며 “(기간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과 통화를 해보겠다. 언론 통해서 입장을 봤기에 어떤 생각인지 직접 들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의원총회 때도 지금 상황에서 의견이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쪽으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는데 조사 결과 응답자의 과반 넘는 의견이 김종인 비대위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밤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가 김 전 위언장 간의 회동은 불발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밤 외출 후 귀가하는 길에 서울 종로구 자택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만나 "심 원내대표를 안 만났다"며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서 못 만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 선택은 주요 인사들의 낙선 등으로 인물난을 겪는 상황에서 불가피했다는 전문가들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의 중도 이미지가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한 통합당에 적합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 생존이 불안한 상황일수록 이념 중심이 아닌 실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 보수당도 보수 가치를 떠들 때가 아니다”며 “경제학자이자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좋다”고 평가했다.


반면 비대위 전환을 결정하기 전 자체적으로 총선 패배 원인을 분석해 반성하는 단계를 거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자기반성을 통해 당 방향을 잡고 이에 필요한 사람이 와서 전권을 갖고 당을 바꿔야 하는데 기록적인 참패에 성찰이 없다”고 짚었다.

 

김종인 “기간·권한 보장해야”


총선 다음날인 4월16일 “일상생활로 돌아가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여의도를 떠난 ‘여의도 차르’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 4월15일 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사퇴 직전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위를 맡아 달라”고 한 데 이어 4월22일 통합당 지도부가 ‘비대위 체제’ 전환을 공식화하면서 위원장직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당 재건을 위한 확실한 기간과 권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4월22일 오전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한 김 전 위원장은 ‘향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조기 전당대회 이야기가 자꾸 나오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기 전당대회가 전제가 된다면 (비대위원장을) 할 수가 없다”고 배수진을 치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같으면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다들 힘을 합쳐야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각각 이해관계 때문에 발언하면 걷잡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헌·당규에 전당대회가 7월로 예정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당대회를 8월에 하겠다 혹은 7월에 하겠다는 전제가 붙으면 나한테 와서 (제안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며 “비대위라는 것은 당헌·당규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꾸려갈 비대위 기간에 대해서는 “일을 해 봐야 아는 건데, 다음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준비가 철저히 되지 않고서는 비대위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며 “대권을 제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준비까지는 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홍준표 전 대표가 자신을 가리켜 ‘대권을 꿈꾼다’는 지적한 것과 관련, “꿈꾸는 사람이야 홍준표씨뿐이겠냐”며 “사실 대권 꿈이라는 게 꿈 꾼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고 여러 여건이 갖춰지고 국민들의 의사가 집약됐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아닌 여건을 만들어 최대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보수진영 일각에서 통합당 해체론이 나오는 데 대해서는 “당을 해체한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해체를 하면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극복하려면 진짜 새롭게 창당하는 수준에서 (바꿔야 한다)”며 “국민에게 솔직하게 시인할 것은 하고 사과할 것은 하고 다음 해야 할 일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통합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경우 지금의 최고위원들은 전원 사퇴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게 되면 여덟 번째 비대위가 된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비대위 역사는 ▲2010년 6월 김무성 비대위 ▲2011년 5월 정의화 비대위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2014년 5월 이완구 비대위 ▲2016년 6월 김희옥 비대위 ▲2016년 12월 인명진 비대위 ▲2018년 7월 김병준 비대위로 이어져왔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하려면 통합당은 서둘러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비대위원장 선임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아


통합당이 총선 이후 지도부 공백과 수도권 참패 후폭풍을 해결하기 위해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는 대신 ‘김종인 카드’를 선택했지만 내부에선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비대위 출범의 절차와 권한, 활동기간을 두고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등 당내 일각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김 전 위원장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내에서 최다선(5선)에 성공한 정진석 의원은 4월2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 비대위 체제 전환 결정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은 월권행위”라며 심재철 권한대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총선 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해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의 임무는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행정적 절차를 주관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며 “지금 시급한 것은 조속한 당선자 대회의 개최”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또한 “심 원내대표가 현역 의원, 당선자들을 설문조사해서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 ‘조기 전당대회 개최’ 등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며 “그에게 위임된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집 비우고 떠나는 사람이 ‘인테리어는 꼭 고치고 떠나겠다’고 우기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총선 참패를 극복하기 위한 당내 논의가 산으로 오르고 있다”며 “질서 있는 퇴각, 전열의 재정비로 가지 못하고 뒤죽박죽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선자 대회의 개최, 새 원내대표(당 대표 권한대행)의 선출”이라고 강조했다.


홍 당선인은 4월22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아무리 당이 망가졌기로서니 기한 없는 무제한 권한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당을 너무 얕보는 처사가 아닌가”라고 김 전 위원장을 힐난한 뒤 “그럴 바엔 차라리 헤쳐 모여 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닌가.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릴 때는 아니라고 본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통합당은 4월21일 현역 의원과 21대 총선 당선인 142명 중 14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찬성 43%의 비율로 ‘김종인 비대위’ 전환을 결정한 바 있다.


김영우 통합당 의원은 이와 관련, 4월22일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당 참으로 답답하다. 20대 국회 현역의원과 21대 국회 당선자에게 당사무처에서 전화 여론조사 결과 김종인 비대위로 가기로 했단다”라며 “아무리 급해도 모여서 토론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전화 여론조사라니, 그것도 위원장의 기한도 정해지지 않은 전권을 갖는 비대위라니”라고 개탄했다.


김 의원은 “도대체 당이 이제 집으로 가게 될 당 최고위원들의 사유물이던가”라며 “전권을 갖는 비대위원장이라니 참으로 비민주적 발상이고 창피한 노릇이다. 총선 참패의 원인, 보수당의 현실, 가치와 미래 방향에 대한 토론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남에게 계속 맡기기만 하는 당의 미래가 있을까”라고 꼬집었다.


한편 4월22일 비(非) 박근혜계 의원들이 모여 만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자체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런 만큼 김종인 비대위호가 순항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을 재건하기 위한 비대위의 역할도 만만치 않고,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내 반발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통합당이 전국위를 개최하더라도 불발에 그칠 우려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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